2013. 9. 11. 15:34

고별강연 中 발췌

고전학문의 정신은 데이터에서 출발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서양학문을

 

이해하려면 데이터에서 출발한다는 특징을 아무리 강조를 해도 부족합니다.

 

왜냐? 신화라는 것은 데이터가 없습니다. 데이터 없는 얘기를 합니다. 그런데

 

탈레스를 서양의 학문의 시조라 하는 이유는, 그가 현재 자기에게 주어진 여러가지의 사물,

 

거기에는 물도있고 생선도 있고, 불도있고, 세계의 모든것이 다 있는데, 그러한 자기에게

 

주어진 데이터의 총체속에 있는 관계가 무엇이냐는 것을 비로소 최초로 반성해 본 사람이기

 

때문이죠 그러면 플라톤은 어떠냐? 플라톤도 그 점은 마찬가지 입니다. 그런데 사실 플라톤이란

 

말도 지금 어떤 가정하에서만 쓰는것이죠. 소크라테스는 <이것은 무엇이냐? What is it?>라고

 

묻습니다. 그 <It>이 바로 데이터입니다. 우선 데이터가 있고 데이터가 데이터로서 그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성격이 무엇이냐는 것을 물어보는 것입니다. 즉 그 데이터가<무엇What이냐>를

 

묻는 것이지, 그 데이터에 대해서 내 의견이 이렇다. 저 사람 의견이 이렇다 하는 것은 그만 두자는

 

얘기 입니다. 모든 학문은 데이터가 있죠. 물리학은 물리학대로 물리 현상이 있고, 또 사회학은

 

사회학대로의 데이터가 있습니다. 데이터가 없는 학문이라는 것은 도대체 희랍철학,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에서는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항상 데이터에서 출발합니다.

 

그래서 철학이란 모든 이론에 앞서서 데이터에서 출발하여 그 데이터를 학문적으로, 어떤 철학 체계로 

 

정리를 해보고, 그리고 그것은 다시 반성해 보는 학문이죠.

 

모든 개별 과학이라는 것은 데이터가 가지고 있는  그 고유한 성격 quality 때문에 여러 학문으로 나누어진

 

것이고, 그 데이터를 어떻게 정리 하느냐에 따라서 또 나누어집니다.

 

음악은 음악대로, 사회학은 사회학대로, 논리학은 논리학대로 다 데이터가 있고 수학은 수학대로,

 

정치학은 정치학대로의 각각의 데이터 위에 학문은 선다는 것입니다.

 

그 데이터가 만약 없다면, 그것은 공중에 뜬 어떤 주관적 견해나 사상이죠.

 

물론 그런 철학도 있을수가 있습니다. 그런 것을 우리가 인생관이나 혹은 세계관이라고 말하죠.

 

그런 것들은 다 자기의 주관적인 견해일 뿐이죠. 그런 철학은, 희랍철학에서 본다면,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에서 본다면 좀 곤란합니다.

 

그러면 도대체 플라톤에서 데이터는 어떤 성격을 띠고 있느냐 하는 문제가 나옵니다.

 

가령 아리스토텔레스하고 비교해 보면 대단히 흥미롭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이 있으면 그냥 사람이지 늙은 사람, 누구누구의 아들, 어디서 온 사람 등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는 그냥 사람이예요

 

왜냐하면 아리스토텔레스에 있어서는 늙은 사람이니, 젊은 사람이니, 어디서 온 사람이니,

 

누구 아들이니 할 적에, 그 젊다느니, 누구 아들이니 하는 것은 전부 사람에 대해

 

우연적인 속성이기 때문에 학문에서는 별 가치가 없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그런것들을 다 빼버립니다. 다시 말하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데이터라는 것은

 

벌써 아리스토텔레스의 체계 System에 의해서 추상화 된 데이터 입니다.

 

근세 물리학에 대해서도 우리가 그런 말을 할 수가 있고, 베르그송에 대해서도 우리가

 

그런말을 할 수가 있고, 모든 다른 철학에  대해서도 그런 얘기를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플라톤의 데이터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 사람은 늙었는데, 이름은 무엇이며 누구누구의 아들이고,

 

어디서 왔고, 무엇하러 온 사람이라는 등등으로 자세히 나옵니다.

 

다시 말하면, 고유 명사의 입장에서 데이터가 주어집니다. 철학적인 데이터라는 것은 개별 과학적인

 

데이터와는 달리 모든 데이터의 총체를 의미합니다. 플라톤은 그 데이터의 총체에 접근approach 할

 

때에, 우선 직접적인 어떤 역사적 사건으로서, 다시 말하면  우리의 추상적인 사고가 하나도

 

들어가 있지 않는 상태에서부터 데이터를 이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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