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8. 20. 01:58

의심할 수 있는 것들에 관하여

데카르트

 

제1성찰

 

 

의심할 수 있는 것들에 관하여

 

이미 여러 해 전에 나는 깨달은 바 있다. 어릴 적부터 나는 많은 거짓된 것을

 

참된 것으로 받아들여 왔고, 그 후 내가 그것들 위에 세운것은 극히 의심스러운

 

것이므로 학문에 있어서 언젠가 확고부동한 것을 세우려고 한다면 일생에 한번은

 

전에 받아들였던 모든 의견을 송두리째 무너뜨리고 처음부터 토대를 쌓기 시작해야

 

한다고, 그러나 이것은 아주 큰일이라고 여겨졌으므로 나는 이 일을 하기에 더 적합

 

한 때가 오지 않으리라 생각될 정도로 성숙한 연령에 이를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하여 오랫동안 연기해 왔으므로 아직도 주저하여, 남아있는 시간을 헛되이

 

보낸다면, 이제부터는 과오를 범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래서 다행이 오늘 내 정신은 모든 염려에서 해방되고 평온한 여가를 얻어 홀로

 

조용히 들어 앉아 있으므로, 진지하고도 자유롭게 전에 내가 가졌던 모든 의견을

 

온통 무너뜨리는 일을 해보려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그 의견들이 모두

 

거짓된 것임을 증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고, 또 아마  나는 그 일을 해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미 이성은 전적으로 확실하고 의심할 수 없는 것이 아닌 것들에 대하여는,

 

명백히 거짓된 것에 대한 경우만큼 조심하여 동의를 삼가야 한다고 나를 설득하므로,

 

그 의견들 중 어느 하나 속에 조금이라도 의심할 이유가 있으면, 이것만으로 그 모든

 

의견을  버리기에 충분할 것이다. 이렇게 하는 데는 그 의견들을 하나하나 검토할

 

필요가 없다.이것은 끝없는 일이 될 것이다. 토대가 무너지면 그 위에 세운 것이 온통

 

저절로 무너지므로, 전에 내가 가졌던 모든 의견들이 의지하고 있던 원리 자체를 따져

 

보려 한다.

 

지금까지 내가 참되다고 여겨 온 모든 것을 나는 감각으로부터 혹은 감각을 통하여

 

받아들였다. 그런데 나는 이 감각들이 가끔 속인다는 것을 경험하였다. 한번이라도

 

우리를 속인 것에 대하여는 결코 전폭적인 신뢰를 하지 않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그러나 아주 작은 것과 아주 먼 곳에 있는 것들에 관하여는 감각이 가끔 우리를

 

속이지만, 감각을 통해서 알게 된 것들 가운데도 도저히 의심할 수 없는 것이 많다.

 

가령 지금 내가 여기 있다는 것, 난롯가에 앉아 있다는 것, 겨울옷을 입고 있다는 것,

 

이 종이를 쥐고 있다는 것, 이 밖에 이와 비슷한 것은 도저히 의심할 수 없다. 나의

 

이 손과 이몸이 내 것이라는 것을 어떻게 부정할 수 있을까? 이것을 부정하는 것은

 

마치 내가 미친 사람들 축에 끼여 들어가려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들은 검은 담즙에서

 

올라오는 나쁜 증기 때문에 뇌가 아주 뒤집혀져서 알거지이면서도 임금이라고 우겨대고,

 

벌거벗고 있으면서도 자줏빛 옷을 입고 있다느니, 머리가 진흙으로 되어 있다느니, 자기의

 

몸 전체가 호박이라느니, 유리로 되어 있다느니 고집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인간이다. 그래서 밤에는 으레 잠을 자고 꿈속에서는 미친 사람들이 깨어 있을

 

때에 머리 속에 그리는 것과 똑같은 것을 모두 그리고 때로는 그보다 더 엉뚱한 것을 그린다.

 

밤에 잠들어 있을때 나는 옷을 벗고 침대에 누워 있건만, 깨어 있을 때처럼 내가 여기 있다고,

 

난롯가에 앉아 있다고 몇 번이나 믿었던가? 그러나 지금 이 종이를 보고 있는 내 눈은 분명히

 

깨어 있다. 움직이고 있는 이 머리는 잠들어 있지 않다. 나는 어떤 의도를 가지고 또 의식하면서

 

이 손을 펴며, 또 이것을 감각하고 있다. 잠들어 있을 때에는 모든 것이 이렇게 판명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 대해서 주의 깊게 생각해 볼 때, 나는 잠들어 있을 때, 이와 비슷한 착각에

 

가끔 속았던 것이 생각난다. 이러한 생각을 곰곰히 하고 있노라면, 깨어 있는 것과 잠들어 있는

 

것을 확실히 구별할 수 있는 표적이 전혀 없음을 보고 나는 몹시 놀란다. 그 놀람이 어찌 큰지 나는

 

지금 꿈꾸고 있다고 믿을 지경이다.

 

그러면 지금 우리가 꿈을 꾸고 있다고 하자. 그리고 저 개별적인 것들, 즉 우리가 눈을 뜨는 것,

 

머리를 움직이는 것, 손을 펴는 것 및 이와 비슷한 것들은 참된 것이 아니라고 하자. 또 아마

 

우리는 손도 몸 전체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하자. 그러나 잠들어 있을 때에 보이는 것은

 

현실적으로 있는 것을 모방하지 않고서는 만들 수 없는 화상과 같은 것이므로 적어도 이 일반적인

 

것들, 즉 눈.머리.손.몸 전체는 공상적인 것이 아니라 참된 것으로 현존한다는 것을 인정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사실 화가들은 세이렌 사튀로스를 더할 나위 없이 기괴한 모양으로 그리려고 노력할

 

때에도, 그것들에 전혀 새로운 본성을 부여할 수는 없고, 다만 갖가지 동물의 여러 부분을 이리저리

 

뒤섞을 따름이기 때문이다. 혹은 설사 그들이 비슷한 데가  전혀 없을 만큼 신기하고 따라서 전혀 허구요

 

허위라고 할 만한 것을 생각해 낸다 하더라도 적어도 그것을 구성하는 빛깔들은 참된 것이 아닐수 없다.

 

그리고 똑같은 이유에서, 비록 일반적인 것들, 즉 눈. 머리. 손 및 이와 비슷한 것들이 공상적인 것일 수

 

있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이보다 더 단순하고 보편적인 것들은 참되고 현존한다는 것, 그리고 우리의

 

생각 속에 있는 사물의 상(像)들은 참된 것이든, 거짓된 것이든, 모두 위에서 말한 신기한 것이 참된 빛깔

 

로 구성되어 있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이와 같은 보편적인 것들로써 만들어져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종류에 속한다고 생각되는 것은 물체적 본성 일반 및 그 연장(延長), 그리고 연장을 가지고 있는

 

것들의 모양, 이것들의 양, 즉 이것들의 크기와 수, 또 이것들이 있는 장소, 이것들이 지속하는 시간 등이다.

 

그로므로 이로부터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려도 무방할 것이다.ㅡ

 

자연학.천문학.의학. 및 이 밖에 복합된 것들의 고찰에 의존하는 모든 학문은 매우 의심스러운 것들이지만,

 

대수학.기하학 및 이런 성질의 학문들은 극히 단순하고 극히 일반적인 것들만을 취급하고, 또 이런것들이

 

자연 속에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은 문제 삼지 않기 때문에 확실하고 의심할 수 없는 어떤 것을 내포하고

 

있다고. 왜냐하면 내가 깨어있건, 잠들어 있건 2에 3을 더하면 언제나 5이고, 4각형은 네 변 밖에 가지지

 

못하며, 또 이와 같이 분명한 진리들이 허위의 혐의를 받을 수 잇다고는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현재와 같은 상태로 존재하게 된 것은 혹은 운명에 의하여 혹은 우연에 의하여 혹은 사물들의

 

연속적 연결에 의해서 인데. 어떤 실수를 한다든가 속는다든가 하는 일종의 불완전성이라고 여겨지므로,

 

내 기원의 작자로 보이는 것이 무력하면 할수록, 내가 항상 속을 정도로 더욱 불완전하리라는 것은 확실한

 

일이다. 이러한 의론에 대하여 나로서는 대답할 것이 아무것도 없고, 다음과 같이 고백할 수 밖에 없다.

 

즉 내가 전에 참되다고 믿은 것들 가운데 지금 내가 의심할 수 없는 것은 하나도 없는 바, 이렇게 의심함은

 

무시나 경솔함 때문이 아니요, 아주 유력하고 숙고 된 이유에서이며, 따라서 내가 무엇인가 확실한 것을

 

찾고자 한다면, 이러한 의론에 대하여도 분명히 잘못된 것들에 대해서처럼 조심하여 이제부터는 동의를

 

삼가야 되겠다고.

 

그러나 이런 말을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이런 것들을 항상 염두해 두도록 마음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오래된 의견들이 줄곧 되돌아와서는 이를테면 오랜 습관과 친숙하게 된 연줄로

 

말미암아 이 의견들에 매여 있는 나의 쉽게 믿는 마음을 내 의사에 거역하면서까지 점령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이 의견들을 사실 있는 그대로라고 생각하는 동안은 즉 방금 위에서 말한 것처럼 좀 의심

 

스럽기는 하나 그래도 매우 그럴듯하기도 하여, 그것을 부정하기보다는 믿는 것이 훨씬 더 합당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동안은, 나는 결코 그 의견들에 동의하고 신뢰하는 습관에서 빠져 나오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의지를 아주 반대 방향으로 돌려 나 자신을 속이고 얼마 동안 이 의견들이 거짓되고

 

공상적인 것이라고 가상하기로 하자. 그리하여 마침내 쌍방의 편견의 무게가 평형을 얻도록 하여,

 

다시는 삐뚤어진 습관이 내 판단을 사물들에 대한 올바른 인식에서 빗나가지 않도록 하련다.

 

나는 이렇게 하는 것은 조금도 부당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렇게 한다고 해도 아무

 

위험도 잘못도 생기지 않으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으며 , 또 지금 내가 문제 삼고 있는 것은 행동에

 

관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인식에 관한 것이므로, 아무리 불신을 일삼아도 지나치지는 않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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