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8. 25. 18:38

1. 인위적인 것과 자연의 구별

희랍 철학의 주류에는 인위적인 것과 인위적이 아닌 것의 구별이 있다. 희랍 사람들은 인위적이 아닌

 

것을 자연이라 부른다. 인위적인 것에는 사람들이 만든 말, 사람이 내리는 판단, 해석 그리고 관습 및 사회적

 

통념의 일부분이 포함된다.

 

플라톤의 저서로는 대화편이 있다. 대화편의 대부분은 대화의 주인공들이 모임을 갖고 서로 주고받는 말을 통해서

 

철학을 전개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철학의 전개를 logikos 라고 하면서 비판한다. 여기서 logikos

 

말로만 한다는 뜻이다. 즉 플라톤의 대화편의 주인공들은 사물을 직접 취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러한 비판은 일방적이다. 플라톤의 대화편의 주인공들은  그들 나름대로 대상을 직접

 

다루며 다만 그 결과를 말을 통해 상대방에게 전달할 뿐이다. 플라톤의 대화편에선 오히려 소피스트가 비판을

 

받는다. 소피스트는 모든 것을 말로 모방하여 마치 진리인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들의 말들은 허구적이라는

 

것이다. 소피스트는 직업적으로 말을 가지고 유희하는 사람들로서 그들은 말로만 그럴 듯하게 꾸며대어 사람들을

 

믿게 하고 사물 자체의 진상은 등한시 한다는 것이다.

 

말이 대상과 허구적으로 될 수 있음은 비단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나 플라톤의 대화편에서만 지적되는 것이 아니라

 

멀리 초기 자연철학자의 단편 속에서도 엿보인다.

 

크세노파네스의 단편 B32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사람들이 이리스 Iris 여신이라고 명명하는 것은 사실은 구름이다.)

 

파르메니데스의 단편 8의 38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가시적인것이 존재의 진리라고 믿고서 주장하는것들, 곧 생성과

 

소멸, 존재함과 동시에 없음 , 장소의 예화, 밝은 색의 변화 등은 모두 말뿐이다.) 아낙사고라스의 단편 B19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희랍 사람들은 생성과 소멸을 잘못 판단 하고 있다.nomizesthai 왜냐하면 어떠한 사물도, 생성하거나

 

소멸되지 않으며 다만 존재하는 사물의 결합과 분리가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생성을 결합이라 부르고 소멸을

 

분리라고 부름이 옳다.)

 

크세노파네스의 단편에서 추측되듯이 신화의 시대에는 신의 이름과 대상 사이의 괴리가 자각되지 못했다.

 

곧 신화의 몰락과 철학의 대두는 신화에서 사용되는 말이 사실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음이 자각됨과 동시에 이루어졌다.

 

그리고 파르메니데스와 아낙사고라스의 단편에 나타나 있듯이 희랍 사람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언어의 허구성이

 

있음을 철학자는 자각하였다.

 

말의 배후에는 판단 doxa 이 있다. 판단은 말 못지않게 사실과 괴리될 수있다. 대상이 직접적으로 주어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진상이 드러나기나 한 듯이 판단을 내리는 해석은 허구적이다. 점쟁이는 새의 내장 빛깔을 보고 길흉을

 

예견할 수 있다는 듯이 장래를 해석한다. 신전 속에서 신의 영감을 받고 사물을 해석하는 신관의 판단은 허구적이다.

 

그리고 그 판단 가운데는 개인적인 판단도 있거니와 관습이 밑받침 된 판단도 있다. 관습nomos은 지방과 종족에

 

따라 다르고 시대에 따라 변하며 어느 한 지방, 한 부족, 한 시대에 통용되는 관습은 다른 지방, 다른 종족, 다른 시대에

 

는 허구적이다. 희랍 민족은 다른 민족보다 유달리 훌륭한 관습 및 사회적인 기강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패쇄적인 시대에서 개방적인 시대로 접어들면서 그들의 관습은 허구적임이 드러났다.

 

인위적인 것이 허구적일 수 있음을 자각한 희랍 사람들은 사람이 사물에 첨가한 모든 것을 제거하고 사물 자체,

 

곧 자연을 인식하려고 했다. 곧 허구적이면 인식이 아니라는 것이 자각되던 것이었다.

 

여기서 희랍 사람들 사이에서 인식의 본성이 무엇으로 규정되었는지가 분명히 드러난다. 인식은 사물을 사물 그대로

 

받아들임의 한 방식이며 이것은 인식의 비허구성을 뜻한다. 그런데 사람이 인식에 허구성을 부여한다.

 

그러므로 인식 episteme 과 주관적인 판단 doxa은 대립되고 대립은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에 이르기까지

 

변함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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