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8. 22. 17:39

거짓말쟁이들에 대하여-몽테뉴

 

 

기억력에 대해서 말하자면, 나보다 더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내 기억의 자국도

 

찾아내지 못하며, 세상에 이렇게도 망측하게 잘 잊어버리는 사람이 또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다른 점에서도 비열하고 범속하다. 그러나 기억이라는 면에서 나는 특이하고 대단히

 

드문 인물이며, 이 점에서 명성을 얻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그 때문에 내가 겪는 타고난 불편 이외에도ㅡ왜냐하면 그 필요성을 보아서도, 플라톤이 이 기억력을

 

위대하고 강력한 여신이라고 부른 것은 옳은 일이다.ㅡ우리 고장에선 지각 없는 사람을 가리켜, '그는

 

기억력이 없다.'고하므로 내가 내 기억력의 결함을 한탄하자, 사람들은 마치 내가 자신을 바보라고

 

한 줄로만 알고 나를 책망하여 내말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기억력과 이해력을 분간하지 못한다.

 

그것은 너무 억울한 흥정이며, 그들의 잘못이다. 왜냐하면 반대로 탁월한 기억력은 판단력이 약한 사람에게

 

더 많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 역시 그들의 잘못으로, 나는 그들의 친구가 될 생각밖에 없는데, 내 결함을 비난하는 말투를

 

배은망덕으로 보이게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기억력이 약한 나의 심정을 원망한다. 그리고 이 타고난

 

결함을 양심의 결함으로 삼는다. '저 자는 이런 청탁, 저런 약속을 잊어버렸다'고 말한다.

 

'저 자는 친구도 잊어먹었다. 그는 나를 위해서 이렇게 말한다. 이 일을 한다, 이런 것은 말 않겠다고 한 것을

 

생각하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다. 사실 나는 곧잘 잊어버린다. 그러나 나는 친구가 지워 준 책임을 아무렇게나

 

넘기는 따위의 짓은 하지 않는다. 나의 불행한 결점을 참아 주어야지 이것을 악의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더욱이 악의란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다.

 

 

 

기억력이 충분하지 못한 사람은 거짓말쟁이가 될 생각은 아예 말라는 것은 이유 없는 말이 아니다. 나는 문법학자

 

들이 '거짓을 말한다'와 '거짓말을 한다'사이에 차이를 두고 있는 것을 잘 안다.그들은 '거짓을 말한다'는

 

것은 그릇된 일을 말하면서 그것이 진실인 줄 생각한 것이고, 우리 프랑스어가 라틴어에서

 

받아온 '거짓말 한다'라는 말의 정의는 자기 양심에 반대되는 뜻을 품었기 때문에, 이것은 자기가 알고 있는 바와

 

는 반대되는 일을 말하는 경우를 가리킨다고 그들은 말한다. 내가 말하는 것은 이런 자들이다. 그런데 이자들은

 

찌꺼기나 알맹이를 모두 꾸며 대든지, 또는 진실한 근거를 가장해서 변질시킨다. 가장해서 변질시킨 말을 이야기

 

속에 집어넣다가, 일순간 말문이 막히지 않기란 어렵다. 왜냐하면 사실대로의 이야기가 먼저 기억속에 들어 앉아서

 

인식과 지식이 되어 박혀 있는 까닭으로, 그것이 공상에 떠돌아서 갑자기 생각이 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직 확고한

 

발판도 없고 아주 박히지도 않은 거짓말을 몰아내며 첫번에 받은 인상이 가짜로, 또는 변질시켜서 말한 부분이 기억을

 

잊어버리게 하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꾸며 낸 일은 그 거짓과 서로 어긋나게 되며 반대되는 인상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말이 헛 나올 걱정이 덜할 것 같다. 그렇지만 이것도 역시 본디 매인 곳이 없는 허황된 이야기인

 

만큼, 확고하게 유념해 두지 않으면 기억에서 사라지기가 쉽다.

 

그들이 단지 당장에 교섭하고 있는 일을 맞춰서, 그리고 윗사람들의 비위를 맞춰 주기 위해서 이렇게밖에는 할 줄 모른다고

 

말하는 자들이 당하는 면구스런 꼴에서, 나는 재미있게도 그 증거를 자주 보았다. 왜냐하면 그들이 양심을 속이고 신의를

 

굽혀가며 처리하려는 이런 상황들은 여러 변화를 겪게 되기 때문에, 그에 따라서 그들의 말도 이가 맞지 않게 되는 까닭이다.

 

그래서 똑같은 일을 가지고도 전에는 회색이던 것이 다음에는 누런빛이 되고, 이 사람에게는 이 모양, 저 사람에게는

 

저 모양으로 말했다가, 다음에 우연히 그들이 들은 반대되는 말을 가지고 따지러 오게 되면 이 훌륭한 기술은 무슨 꼴이 될

 

것인가? 뿐만 아니라 그들은 지각 없게도 제 올가미에 자신이 걸리는 일이 너무 자주 일어난다. 왜냐하면 똑같은 재료를

 

가지고 그렇게도 여러 가지로 말해 놓은 것을 무슨 기억력으로 모두 둘러맞출 재간이 있겠는가? 나는 우리 시대에 이런

 

훌륭한 기술을 가졌다는 평판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을 보았지만, 그것은 명성이 뭔지 모르거나 성과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사실 거짓말은 저주받을 악덕이다. 우리는 오로지 언약을 지킴으로써만 사람이 되며 서로 믿고 살아갈 수 있다. 거짓말의

 

가중함과 그 무서운 결과를 잘 알고 있다면, 우리는 다른 범죄보다도 이런 짓을 마땅히 화형에 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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