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 23. 14:03
호로비츠 Schubert Piano Sonata in B flat major, D 960
2008. 1. 23. 14:03 in 위대한 연주자/호로비츠
Piano Sonata No.21 in B flat major D.960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21번 B flat장조
Franz Schubert (1797-1828)
Vladimir Horowitz, piano
위대한 약속
슈베르트는 항상 진지했고 스스로에 대한 채찍질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그는 충분히 위대한 예술가였다. 다양한 작품을 창작하던 슈베르트는 그 동안의 작품에 대해 가차없는 자아비판을 가하기 시작했는데 그의 나이 29세 때였다. 그는 자신이 존경하는 베토벤과 비교해서, 자기의 작품들은 즉흥적이고 표피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리하여 그는 베토벤의 대위법을 다시 공부하여, 베토벤이 주는 복합적이고 심층적인 감동을 담은 작품을 써야 한다고, 아니 쓰겠다고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그것은 '위대한 약속' 이었다.
그리하여 남긴 곡이 그의 가장 위대한 유산으로 평가되는 마지막 세 곡의 피아노 소나타들이다. 꺼져가는 생명의 심지 앞에서 인간으로서 그리고 예술가로서의 마지막 갈망을 모두 담아서 열정적으로 써낸 작품들, 그 세 곡은 모두 그가 죽은 해인 1828년에 쓰여졌다.
종말이 가까워질수록 인간의 의식은 더욱 또렸해지고 죽음에 다가 갈수록 예술가의 영감은 더욱 불타오르는 것인가? 세 곡의 피아노 소나타를 쓴 것은 세상을 떠나기 두 달 전의 일이다. 이 세 곡은 '슈베르트 최후의 3대 소나타'로 불리는 대곡들이며, 모두 슈베르트가 죽고 난 이후에 출판된 유작들이다. 그것들은 제19번 C단조 D.958, 제20번 A장조 D.959, 제21번 B플랫장조 D.960이다.
특히 마지막 곡인 피아노 소나타 B플랫장조 21번 D.960은 슈베르트의 곡 중에서도 최고의 대작이란 평가를 듣는다. 베토벤과 같이 뛰어나고 깊이 있는 피아노 소나타를 쓰겠다던 슈베르트가 19번과 20번을 그가 목표하던 베토벤적인 곡을 탄생시켰다면, 마지막 21번은 '슈베르트적인 피아노곡' 이라는 완벽하면서도 독특한 경지를 이룬 금자탑이라고 할 수 있다.
작품구성
제 1 악장 Molto moderato
소나타 형식으로 느낌이 다른 두 개의 주제가 교대로 나온다. 20분이 넘는 이 큰 악장은 피아노란 악기 하나가 보여주는 원숙한 구조적 아름다움으로 듣는 이에게 장대한 거눅물과 같은 경외심을 불러 일으킨다.
1악장 몰토 모데라토 Bb장조 4/4박자
아주 슈베르트적인 온건한 주제가 뚜렷하게 노래되면서 시작된다. 제8마디에서 저음역에 인상적인 트릴이 위치하고 있다. 주제는 확보후에 제20마디부터 16분음표의 반주형에 실려 Gb 장조로 발전해 간다. 다시 으뜸조로 주제가 확보되어 4마디의 조바꿈 악구를 지나 제48마디의 제2주제를 유도한다. 테너 성부가 가벼운 리듬 음형 가운데 f#단조의 노래를 조용하게 시작하고 노래를 소프라노로 옮겨 발전시킨다. 셋잇단음표를 경쾌하게 진행시키며 주제의 일부분을 곁들인 코데타에 이른다. 발전부는 제18마디에서 C#단조로 두 주제를 교묘하게 연결시킨 노래로 시작된다. 이것은 발전부 소재의 명시이다. 전반의 전개는 셋잇단음표를 중심으로 구성되고 후반에서는 8분음표가 중심이 된다. 이 두 종류의 기본 음형 속에 주제 소재를 두어 멋진 구성을 이루고 있다. 저음부에 트릴 음형이 나타나서 시작되는데. 점차로 주제가 본래의 형태를 되찾고 제215마디에서의 재현부로 이행되어 간다. 제1주제에서의 충실한 재현이지만 제2주제는 b단조로 돌아온다. 노래의 발전과 더불어 Bb장조로 안착되며,, 제시부의 구성을 답습한다. 제1주제를 회상하는 코다는 인상적인 트릴로 조용하게 끝난다.
제 2 악장 Andante sostenuto
가요풍의 안단테 악장이다. 슈베르트의 낭만성이 아낌없이 나타난, 보덴호수의 파란 물처럼 깊고 맑은 서정성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악장이다.
제2악장 안단테 소스네투토 c#단조 3/4박자
단순한 3부형식으로 만들어졋으나, 아주 아름답고 신비적이기도 하다, 여유로운 오른손의 멜로디가 왼손의 3옥타브에 걸친 한음의 확장 속을 누비면서 풍부한 표정으로 연주되어 간다. 제2부는 주제에서 파생된 노래가 16분음표로 새기는 음 위에 A장조로 노래되면서 시작된다. 그 후 베이스에 또 하나의 반주형이 나타나 16분음표는 알토에서 펼침화음으로 변화되고 선율은 소프라노에서 분명하게 노래된다. 이 형태를 두번 반복하고 나서 제2부를 끝맺고 있다. 제3부는 재현부이며 아름다운 노래가 그대로 반복되어 연주된다. 왼손의 확장 성부에 장식적인 음형이 부가되어 더욱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다. 거의 재현을 끝마친 후에 코다부가 되며, 같은 노래를 C#장조로 아름다움을 더해가며 반복되고 이 조성 그대로 악장을 끝맺는다.
제 3 악장 Scherzo: Allegro vivace con delicatezza
제3악장 스케르초 알레그로 비바체 콘 델리카데차 Bb장조 3/4박자
베토벤적인 분위기에서 완전히 이탈하여 슈베르트의 독자적인 고귀함을 연주하고 있다. 콘 델리카테차라고 지정된 이 악장은 트리오부도 포함하여 전체가 거의 약하게 연주되고 있으며, 섬세한 정감 가운데 구성되어 있다. 온전한 주제가 제시되면 이것이 고음부와 저음부에 장식을 덧붙이면서 반복한다. 트리오는 b플랫단조의 소박한 선율이 싱커페이션으로 연주되는 화음의 4성부에 놓여져 시작된다. 왼손도 한 마디마다 제1박에 sfp의 악센트를 덧붙여 리듬의 흥미로움을 강조해 간다. 짧은 트리오이기는 하지만 도중에 Gb장조의 부분을 두고 변화를 갖고 있다. 스케르초에 다 카포한 후에 4마디의 특별하게 만들어진 코다로 뛰어가 악장을 끝맺는다.
제 4 악장 Allegro ma non troppo
교향곡처럼 다시 소나타 형식이다. 특히 4악장의 뒷부분에 보여주는 장대한 코다는 이 곡의 마지막일 뿐 아니라 슈베르트의 작품세계 아니, 그의 짧고 숨가빴던 예술세계의 끝을 향하여 치열하고 장엄하게 치닫는다.
제4악장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 Bb장조 2/4박자
명확한 발전부가 없는 소나타 형식으로 주제 전개는 각 부분에서 충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540마디라는 아주 긴 피날레로 되어 있으며, 피날레 악장의 구성에 번민하고 있던 그의 과제를 남긴 채 끝나고 있다. 줒는 c단조로 시작되지만, 점차 으뜸조로 이행되어 간다. 주제의 경쾌함으로 생각해도 그의 뇔에 론도적인 악상이 있었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주제를 반복하여 발전시키면 제86마디에서 F장조의 제2주제가 제시된다. 내성부에 16분음표의 펼침화음이 놓여있는 것 외에는 제1주제와 대립하는 성격은 찾아볼 수 없다. 이 주제가 제224마디까지 펼쳐져 나간다. 이 제2주제부에서는 조금 밖에는 느낄수 없지만, 발전부적 성격이 엿보이며, 특히 후반에 점리듬의 선율이 되고 난 뒤에는 그 성격이 강하며, 왼손의 셋잇단음표 반주에 실려 일종의 춤곡적 양상까지 나타내고 있다. 바로 제225마디에서 재현부가 된다. 그러나 발전부가 없는 이 곡에서는 앞으로의 재현부에 그것을 보충하는 변화기를 가지고 있다. 제시부보다 40마디 정도 확대된 뒤에 다시 50마디의 코다를 가지고 있다. 제491마디에서의 코다는 먼저 제1주제를 재현하고 론도적인 성격의 확인을 마치고 제52마디에서 곡의 속도가 프레스토로 빨라져 본젹적인 코다가 된다. 중간부에 게네랄파우제를 둔 후에 단숨에 크레센도되어 클라이맥스를 만들고 작품을 끝맺는다.
곡이 끝나면, 슈베르트의 힘들었던 삶도 막을 내린다. 독일의 한 평론가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 슈베르트에게는 더 이상의 전개부도 없고 발전부도 없고 코다도 없는, 그야말로 영원한 마침 음만이 존재하고 있다"
슈베르트는 진정으로 피아노를 사랑한 사람이었다. 그는 평생 단 한번도 자신의 피아노를 가져본 적이 없었지만 최고의 피아노곡 소나타 제21번을 남겼다. 자신과의 위대한 약속을 지킨 것이다.
<풍월당 박종호의 내사클 중에서>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21번 B flat장조
Franz Schubert (1797-1828)
Vladimir Horowitz, piano
위대한 약속
슈베르트는 항상 진지했고 스스로에 대한 채찍질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그는 충분히 위대한 예술가였다. 다양한 작품을 창작하던 슈베르트는 그 동안의 작품에 대해 가차없는 자아비판을 가하기 시작했는데 그의 나이 29세 때였다. 그는 자신이 존경하는 베토벤과 비교해서, 자기의 작품들은 즉흥적이고 표피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리하여 그는 베토벤의 대위법을 다시 공부하여, 베토벤이 주는 복합적이고 심층적인 감동을 담은 작품을 써야 한다고, 아니 쓰겠다고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그것은 '위대한 약속' 이었다.
그리하여 남긴 곡이 그의 가장 위대한 유산으로 평가되는 마지막 세 곡의 피아노 소나타들이다. 꺼져가는 생명의 심지 앞에서 인간으로서 그리고 예술가로서의 마지막 갈망을 모두 담아서 열정적으로 써낸 작품들, 그 세 곡은 모두 그가 죽은 해인 1828년에 쓰여졌다.
종말이 가까워질수록 인간의 의식은 더욱 또렸해지고 죽음에 다가 갈수록 예술가의 영감은 더욱 불타오르는 것인가? 세 곡의 피아노 소나타를 쓴 것은 세상을 떠나기 두 달 전의 일이다. 이 세 곡은 '슈베르트 최후의 3대 소나타'로 불리는 대곡들이며, 모두 슈베르트가 죽고 난 이후에 출판된 유작들이다. 그것들은 제19번 C단조 D.958, 제20번 A장조 D.959, 제21번 B플랫장조 D.960이다.
특히 마지막 곡인 피아노 소나타 B플랫장조 21번 D.960은 슈베르트의 곡 중에서도 최고의 대작이란 평가를 듣는다. 베토벤과 같이 뛰어나고 깊이 있는 피아노 소나타를 쓰겠다던 슈베르트가 19번과 20번을 그가 목표하던 베토벤적인 곡을 탄생시켰다면, 마지막 21번은 '슈베르트적인 피아노곡' 이라는 완벽하면서도 독특한 경지를 이룬 금자탑이라고 할 수 있다.
작품구성
제 1 악장 Molto moderato
소나타 형식으로 느낌이 다른 두 개의 주제가 교대로 나온다. 20분이 넘는 이 큰 악장은 피아노란 악기 하나가 보여주는 원숙한 구조적 아름다움으로 듣는 이에게 장대한 거눅물과 같은 경외심을 불러 일으킨다.
1악장 몰토 모데라토 Bb장조 4/4박자
아주 슈베르트적인 온건한 주제가 뚜렷하게 노래되면서 시작된다. 제8마디에서 저음역에 인상적인 트릴이 위치하고 있다. 주제는 확보후에 제20마디부터 16분음표의 반주형에 실려 Gb 장조로 발전해 간다. 다시 으뜸조로 주제가 확보되어 4마디의 조바꿈 악구를 지나 제48마디의 제2주제를 유도한다. 테너 성부가 가벼운 리듬 음형 가운데 f#단조의 노래를 조용하게 시작하고 노래를 소프라노로 옮겨 발전시킨다. 셋잇단음표를 경쾌하게 진행시키며 주제의 일부분을 곁들인 코데타에 이른다. 발전부는 제18마디에서 C#단조로 두 주제를 교묘하게 연결시킨 노래로 시작된다. 이것은 발전부 소재의 명시이다. 전반의 전개는 셋잇단음표를 중심으로 구성되고 후반에서는 8분음표가 중심이 된다. 이 두 종류의 기본 음형 속에 주제 소재를 두어 멋진 구성을 이루고 있다. 저음부에 트릴 음형이 나타나서 시작되는데. 점차로 주제가 본래의 형태를 되찾고 제215마디에서의 재현부로 이행되어 간다. 제1주제에서의 충실한 재현이지만 제2주제는 b단조로 돌아온다. 노래의 발전과 더불어 Bb장조로 안착되며,, 제시부의 구성을 답습한다. 제1주제를 회상하는 코다는 인상적인 트릴로 조용하게 끝난다.
제 2 악장 Andante sostenuto
가요풍의 안단테 악장이다. 슈베르트의 낭만성이 아낌없이 나타난, 보덴호수의 파란 물처럼 깊고 맑은 서정성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악장이다.
제2악장 안단테 소스네투토 c#단조 3/4박자
단순한 3부형식으로 만들어졋으나, 아주 아름답고 신비적이기도 하다, 여유로운 오른손의 멜로디가 왼손의 3옥타브에 걸친 한음의 확장 속을 누비면서 풍부한 표정으로 연주되어 간다. 제2부는 주제에서 파생된 노래가 16분음표로 새기는 음 위에 A장조로 노래되면서 시작된다. 그 후 베이스에 또 하나의 반주형이 나타나 16분음표는 알토에서 펼침화음으로 변화되고 선율은 소프라노에서 분명하게 노래된다. 이 형태를 두번 반복하고 나서 제2부를 끝맺고 있다. 제3부는 재현부이며 아름다운 노래가 그대로 반복되어 연주된다. 왼손의 확장 성부에 장식적인 음형이 부가되어 더욱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다. 거의 재현을 끝마친 후에 코다부가 되며, 같은 노래를 C#장조로 아름다움을 더해가며 반복되고 이 조성 그대로 악장을 끝맺는다.
제 3 악장 Scherzo: Allegro vivace con delicatezza
제3악장 스케르초 알레그로 비바체 콘 델리카데차 Bb장조 3/4박자
베토벤적인 분위기에서 완전히 이탈하여 슈베르트의 독자적인 고귀함을 연주하고 있다. 콘 델리카테차라고 지정된 이 악장은 트리오부도 포함하여 전체가 거의 약하게 연주되고 있으며, 섬세한 정감 가운데 구성되어 있다. 온전한 주제가 제시되면 이것이 고음부와 저음부에 장식을 덧붙이면서 반복한다. 트리오는 b플랫단조의 소박한 선율이 싱커페이션으로 연주되는 화음의 4성부에 놓여져 시작된다. 왼손도 한 마디마다 제1박에 sfp의 악센트를 덧붙여 리듬의 흥미로움을 강조해 간다. 짧은 트리오이기는 하지만 도중에 Gb장조의 부분을 두고 변화를 갖고 있다. 스케르초에 다 카포한 후에 4마디의 특별하게 만들어진 코다로 뛰어가 악장을 끝맺는다.
제 4 악장 Allegro ma non troppo
교향곡처럼 다시 소나타 형식이다. 특히 4악장의 뒷부분에 보여주는 장대한 코다는 이 곡의 마지막일 뿐 아니라 슈베르트의 작품세계 아니, 그의 짧고 숨가빴던 예술세계의 끝을 향하여 치열하고 장엄하게 치닫는다.
제4악장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 Bb장조 2/4박자
명확한 발전부가 없는 소나타 형식으로 주제 전개는 각 부분에서 충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540마디라는 아주 긴 피날레로 되어 있으며, 피날레 악장의 구성에 번민하고 있던 그의 과제를 남긴 채 끝나고 있다. 줒는 c단조로 시작되지만, 점차 으뜸조로 이행되어 간다. 주제의 경쾌함으로 생각해도 그의 뇔에 론도적인 악상이 있었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주제를 반복하여 발전시키면 제86마디에서 F장조의 제2주제가 제시된다. 내성부에 16분음표의 펼침화음이 놓여있는 것 외에는 제1주제와 대립하는 성격은 찾아볼 수 없다. 이 주제가 제224마디까지 펼쳐져 나간다. 이 제2주제부에서는 조금 밖에는 느낄수 없지만, 발전부적 성격이 엿보이며, 특히 후반에 점리듬의 선율이 되고 난 뒤에는 그 성격이 강하며, 왼손의 셋잇단음표 반주에 실려 일종의 춤곡적 양상까지 나타내고 있다. 바로 제225마디에서 재현부가 된다. 그러나 발전부가 없는 이 곡에서는 앞으로의 재현부에 그것을 보충하는 변화기를 가지고 있다. 제시부보다 40마디 정도 확대된 뒤에 다시 50마디의 코다를 가지고 있다. 제491마디에서의 코다는 먼저 제1주제를 재현하고 론도적인 성격의 확인을 마치고 제52마디에서 곡의 속도가 프레스토로 빨라져 본젹적인 코다가 된다. 중간부에 게네랄파우제를 둔 후에 단숨에 크레센도되어 클라이맥스를 만들고 작품을 끝맺는다.
곡이 끝나면, 슈베르트의 힘들었던 삶도 막을 내린다. 독일의 한 평론가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 슈베르트에게는 더 이상의 전개부도 없고 발전부도 없고 코다도 없는, 그야말로 영원한 마침 음만이 존재하고 있다"
슈베르트는 진정으로 피아노를 사랑한 사람이었다. 그는 평생 단 한번도 자신의 피아노를 가져본 적이 없었지만 최고의 피아노곡 소나타 제21번을 남겼다. 자신과의 위대한 약속을 지킨 것이다.
<풍월당 박종호의 내사클 중에서>
블라디미르 호로비츠(1904-1989)
1904 년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난 미국의 피아니스트.피아니스트였던 어머니로부터 기초 교육을 받고 12세의 나이로 키에프 음악원에 입학하지만 당시에는 작곡가가 될 꿈을 갖고 있었다.1918년 본인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아버지가 근무하고 있던 전기 회사에 입사 하지만 스크리아빈의 강력한 권유로 다시 피아노를 시작,학생의 신분으로 콘서트를 개최해서 큰 호응을 얻는다.연주회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그는 수업을 계속해서 펙릭스 블루멘탈을 스승으로 약 1년 동안 피아노를 배우게 되는데,이것은 호로비츠의 연주 스타일을 확정 짓는 중요한 사건이 된다. 말하자면 안톤 루빈스타인의 전통,러시아 피아니즘의 전통을 그대로 전수 받게 된 것이다.
키에프음악원을 졸업한 호로비츠는 수많은 상을 휩쓸면서 22년부터 3년간에 걸쳐 러시아 전역을 무대로 순회 공연에 오른다.당시 그는 솔로 콘서트뿐 아니라 실내악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는데,바이올리니스트 나단 밀스타인은 당시 호로비츠와 활동했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1925년 호로비츠는 러시아를 떠나 서방 세계에서의 연주 활동에 주력하게 된다.하지만 초창기 유럽에서의 활동에는 많은 제약이 뒤따랐다.인지도가 없었기 때문에 모든 연주회를 자비로 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연주는 러시아에서와 마찬가지로 얼마 지나지 않아 큰 반향을 일으켰고,그 여세를 몰아 1928년에는 미국에서 데뷔 무대를 갖는다.당시 호로비츠는 라흐마니노프,요셉 호프만,요셉 레빈 등의 대역으로 활동하면서 점차 인지도를 넓혀 나갔다.
1930 년대 그는 파리에 거주하면서 빌렘 멩겔베르크,아르투로 토스카니니 등과 협연했으며 1933년에는 토스카니니의 딸 완다와 결혼하기에 이른다.잠시 연주 무대를 떠났던 그는 1938년 다시 청중들 앞에 모습을 나타냈으며 이듬해에는 미국에서 콘서트를 개최,과거와 다름없는 인기를 확인한다.당시 미국에서의 반응은 첫 데뷔 때와 마찬가지로 놀라운 것이어서,언론은 그를 일컬어 '대초원에서 온 회오리 바람'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그러나 1953년 뉴욕 카네기 홀에서 데뷔25주년 기념 공연 이후로 다시 침묵 속으로 빠져든다.이 기간 동안 그는 소수의 친한 친구들과 몇몇 제자들-게리 그라프만,바이론 제니스-을 만나는 일 외에는 완전히 고립된 생활을 영위했다.그러나 12년간의 침묵을 깨고 1965년이 되자 그는 역시 카네기 홀 에서 재기 공연을 열면서 청중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을 받는다.이를 기점 으로 점차 연주 횟수를 늘려 갔으며 최후의 로맨시스트로,살아 있는 전설로 만인의 존경을 한 몸에 받게 된다.특히 85년 레닌그라드에서 열렸던 귀향 콘서트는 연주의 질을 떠나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는데,나이가 무색할 만큼 정력적인 활동을 펼치며 일본까지 날아왔던 그는 1989년 뉴욕에서 세상을 떠나고 만다.
호로비츠는 의심할 여지도 없이 20세기 최고의 피아니스트라고 할 수 있다.매스컴이나 대중의 관심도로 비추어 봐도 그를 능가할 인물은 찾을 수가 없다.그 이유는 일차적으로 그가 갖고 있는 독창적인 연주 스타일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투명하면서도 찬란한 음색,그리고 다이내믹한 터치와 색채의 뉘앙스는 그만의 전매 특허였다.특히 스크리아빈의 곡에서 보여 준 힘과 세기의 변화는 이 작곡가의 위대함을 온 세계에 알려 준 독보적인 것이었다.한편으로 그는 '벨칸토야말로 피아노 연주의 미학이다'라고 말하면서 레가토의 개념을 해석에 전용시키고 있어 힘이 넘치는 가운데서도 줄곧 노래를 부르는 듯한 유연한 연주를 들려준다.간혹 악보 자체를 자기 나름대로 고쳐서 연주하는 것도-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을 들어보자-자신의 음악적 주관을 바탕으로 하는 확실한 논리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물론 이러한 행위에 대한 반응은 극단 대립을 유도하기 마련이지만,어설픈 연주자의'객기'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그 무엇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에 이론을 제기할 사람은 그 어디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호르비츠의 레퍼토리는 대단히 넓은 편이다.그리고 그가 연주하는 곡은 그 어떤 것이든 호르비츠류로 변환되기 마련이다.초기에 녹음된 리스트의 피아노 소나타,프로코피에프의 피아노 소나타,스크리아빈의 피아노 작품집,쇼팽의 피아노 소나타,슈만의 <어린이 정경>등은 호로비츠 예술의 핵심에 다가갈 수 있는 첩경을 제공해 준다.
1904 년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난 미국의 피아니스트.피아니스트였던 어머니로부터 기초 교육을 받고 12세의 나이로 키에프 음악원에 입학하지만 당시에는 작곡가가 될 꿈을 갖고 있었다.1918년 본인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아버지가 근무하고 있던 전기 회사에 입사 하지만 스크리아빈의 강력한 권유로 다시 피아노를 시작,학생의 신분으로 콘서트를 개최해서 큰 호응을 얻는다.연주회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그는 수업을 계속해서 펙릭스 블루멘탈을 스승으로 약 1년 동안 피아노를 배우게 되는데,이것은 호로비츠의 연주 스타일을 확정 짓는 중요한 사건이 된다. 말하자면 안톤 루빈스타인의 전통,러시아 피아니즘의 전통을 그대로 전수 받게 된 것이다.
키에프음악원을 졸업한 호로비츠는 수많은 상을 휩쓸면서 22년부터 3년간에 걸쳐 러시아 전역을 무대로 순회 공연에 오른다.당시 그는 솔로 콘서트뿐 아니라 실내악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는데,바이올리니스트 나단 밀스타인은 당시 호로비츠와 활동했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1925년 호로비츠는 러시아를 떠나 서방 세계에서의 연주 활동에 주력하게 된다.하지만 초창기 유럽에서의 활동에는 많은 제약이 뒤따랐다.인지도가 없었기 때문에 모든 연주회를 자비로 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연주는 러시아에서와 마찬가지로 얼마 지나지 않아 큰 반향을 일으켰고,그 여세를 몰아 1928년에는 미국에서 데뷔 무대를 갖는다.당시 호로비츠는 라흐마니노프,요셉 호프만,요셉 레빈 등의 대역으로 활동하면서 점차 인지도를 넓혀 나갔다.
1930 년대 그는 파리에 거주하면서 빌렘 멩겔베르크,아르투로 토스카니니 등과 협연했으며 1933년에는 토스카니니의 딸 완다와 결혼하기에 이른다.잠시 연주 무대를 떠났던 그는 1938년 다시 청중들 앞에 모습을 나타냈으며 이듬해에는 미국에서 콘서트를 개최,과거와 다름없는 인기를 확인한다.당시 미국에서의 반응은 첫 데뷔 때와 마찬가지로 놀라운 것이어서,언론은 그를 일컬어 '대초원에서 온 회오리 바람'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그러나 1953년 뉴욕 카네기 홀에서 데뷔25주년 기념 공연 이후로 다시 침묵 속으로 빠져든다.이 기간 동안 그는 소수의 친한 친구들과 몇몇 제자들-게리 그라프만,바이론 제니스-을 만나는 일 외에는 완전히 고립된 생활을 영위했다.그러나 12년간의 침묵을 깨고 1965년이 되자 그는 역시 카네기 홀 에서 재기 공연을 열면서 청중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을 받는다.이를 기점 으로 점차 연주 횟수를 늘려 갔으며 최후의 로맨시스트로,살아 있는 전설로 만인의 존경을 한 몸에 받게 된다.특히 85년 레닌그라드에서 열렸던 귀향 콘서트는 연주의 질을 떠나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는데,나이가 무색할 만큼 정력적인 활동을 펼치며 일본까지 날아왔던 그는 1989년 뉴욕에서 세상을 떠나고 만다.
호로비츠는 의심할 여지도 없이 20세기 최고의 피아니스트라고 할 수 있다.매스컴이나 대중의 관심도로 비추어 봐도 그를 능가할 인물은 찾을 수가 없다.그 이유는 일차적으로 그가 갖고 있는 독창적인 연주 스타일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투명하면서도 찬란한 음색,그리고 다이내믹한 터치와 색채의 뉘앙스는 그만의 전매 특허였다.특히 스크리아빈의 곡에서 보여 준 힘과 세기의 변화는 이 작곡가의 위대함을 온 세계에 알려 준 독보적인 것이었다.한편으로 그는 '벨칸토야말로 피아노 연주의 미학이다'라고 말하면서 레가토의 개념을 해석에 전용시키고 있어 힘이 넘치는 가운데서도 줄곧 노래를 부르는 듯한 유연한 연주를 들려준다.간혹 악보 자체를 자기 나름대로 고쳐서 연주하는 것도-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을 들어보자-자신의 음악적 주관을 바탕으로 하는 확실한 논리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물론 이러한 행위에 대한 반응은 극단 대립을 유도하기 마련이지만,어설픈 연주자의'객기'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그 무엇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에 이론을 제기할 사람은 그 어디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호르비츠의 레퍼토리는 대단히 넓은 편이다.그리고 그가 연주하는 곡은 그 어떤 것이든 호르비츠류로 변환되기 마련이다.초기에 녹음된 리스트의 피아노 소나타,프로코피에프의 피아노 소나타,스크리아빈의 피아노 작품집,쇼팽의 피아노 소나타,슈만의 <어린이 정경>등은 호로비츠 예술의 핵심에 다가갈 수 있는 첩경을 제공해 준다.
글 그림-참마음 참이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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