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reutzer Sonata (No. 9 in A major for violin and piano) 01. I.Adagio sostenuto - Presto 02. II. Andante con variazioni 03. III.Finale: Presto
Spring Sonata (No. 5 in F major for violin and piano) 04. I.Allegro 05. II.Adagio molto espressivo 06. III.Scherzo: Allegro molto 07. IV.Rondo: Allegro ma non troppo David Oistrakh, violin Lev Oborin, piano (1964)
베토벤은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위한 듀엣곡을 위하여 30여 곡에 이르는 많은 소품들을 작곡하였지만, 그 중에서 바이올린 소나타라는 장르에 작곡된 작품 수는 미완성곡, 출판이 안된 곡 등을 포함하여 모두 20여 곡 정도를 남기고 있으며, 또한 20여 곡 중에서 정상적인 경로로 제대로 출판되어 "번호"가 붙여진 바이올린 소나타의 숫자는 정확히 모두 10곡입니다. 따라서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중에서 번호를 가지고 있는 소나타는 모두 10곡이고, 그 곡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바이올린 소나타 1번 D장조 작품12-1 바이올린 소나타 2번 A장조 작품12-2 바이올린 소나타 3번 E flat장조 작품12-3 바이올린 소나타 4번 A단조 작품23 바이올린 소나타 5번 F장조 작품24 "봄" 바이올린 소나타 6번 A장조 작품30-1 "알렉산더 소나타 1번" 바이올린 소나타 7번 C단조 작품30-2 "알렉산더 소나타 2번" 바이올린 소나타 8번 G장조 작품30-3 "알렉산더 소나타 3번" 바이올린 소나타 9번 A장조 작품47 "크로이체르" 바이올린 소나타 10번 G장조 작품96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1번부터 3번까지는 작품번호 12번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3곡은 모두 같은 시기에 작곡된 곡이며, 작곡 년대는 베토벤의 나이가 27~28살 때인 1797~1798년입니다. 참고로 이 3곡은 모짜르트의 연적이었던 살리에리에게 헌정이 된 곡이기도 합니다.
바이올린 소나타 4번과 5번 "봄" 소나타는 베토벤이 31살이 되던 해인 1801년에 같이 작곡이 된 곡입니다. 따라서 위의 1~3번 소나타처럼 원래는 작품번호가 하나로 묶여져 있었지만, 주위사람들이 이 2곡의 분위기가 너무 정 반대라는 이유로 같은 작품으로 묶어 내는 것은 안된다는 강력한 만류로 인하여, 결국 1802년에 다시 출판될 때 각각 작품번호 23,24번으로 나뉘어져 재출판이 됩니다.
4 번 소나타는 조성이 단조로 작곡이 되어 가라앉은 분위기의 곡이고, 5번 "봄" 소나타는 밝고 명랑한 분위기의 곡입니다. 4,5번은 1801년 10월에 초연이 되었으며 프리스 백작이란 사람에게 헌정이 됩니다. 그리고 5번 "봄" 소나타의 "봄"이라는 부제는 베토벤이 직접 붙인 것이 아니라, 훗날에 이 곡을 들은 평론가가 이 곡의 분위기가 봄의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는 이유로 타인에 의해 부제가 붙여진 곡입니다.
바이올린 소나타 6~8번은 작 품번호로도 보듯이 작품30으로 묶여져서 출판이 되었으며, 작곡 년대는 베토벤이 31~32살이던 시기인 1801~1802년 사이에 작곡이 되었으며, 1803년에 출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곡은 출판 후 곧바로, 그 당시의 러시아의 통치자였던 <<알렉산더 1세 황제>>에게 헌정이 됩니다. 따라서 이 3곡은 <<알렉산더 소나타 1~3번>>으로 불립니다.
9번 소나타는 "봄" 소나타와 함께, 모든 클래식 곡들 중에서 바이올린 소나타의 최대의 걸작으로 꼽히는 소나타로서, "크로이체르"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는 곡입 니다. 이 소나타는 여러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곡입니다. 따라서 바이올린 소나타의 음악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위치에 있는 곡이기도 합니다.
그이유는, 원래 바이올린 소나타는 바이올린이 연주하고 피아노가 반주를 하는 형태의 연주가 정상입니다. 그렇지만 베토벤 이전까지의 작곡자들은 이 점들을 지키지 않았고, 바이올린의 반주로 구성된 피아노 소나타로 작곡이 되었습니다. 또한 베토벤도 소나타 8번까지는 이런 형태를 유지하였습니다.
이런 잘못된 방식을 깨고, 진정한 바이올린 소나타의 연주체계의 형식을 갖춘 곡이, 바로 바이올린 소나타 9번 <<크로이체르>>입니다. 이 소나타는 베토벤 이후의 작곡자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이 9번 소나타는 원래 "크로이체르"라는 부제 대신, "브리지타워"라는 부제가 될 뻔한 곡입니다.
원래 이 소나타는 이 당시에 전 유럽에서 유명하던 영국의 바이올리니스트 브리지타워라는 사람의 연주를 위하여 작곡된 곡이었고, 베토벤은 이 연주가와 우정 이상의 친분을 과시했으며, 베토벤은 이 곡을 브리지타워에게 헌정하기로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이곡을 초연한 뒤로, 두 사람 사이에 우정에 금이 가게 되었으며, 베토벤은 애초에 세웠던 계획을 바꿔서, 그 당시의 프랑스의 수도 파리의 파리국립대학의 음악교수로 있던 <<루돌프 크로이체르>>에게 이 소나타를 헌정합니다.
크로이체르 교수는 이 소나타를 전혀 이해할 수가 없다면서, 결국 별로 관심도 안 주도 내팽겨 칩니다. 크로이체르라 교수는 교수겸 작곡가로, 지금도 바이올린 학습자를 힘들게 하는 <<42개의 연습곡>>의 작곡가로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10번 소나타는 9번 소나타를 작곡한지 무려 9년만인 1812년에 작곡되어, 1816년에 베토벤의 지지자였던 루돌프 대공이란 사람에게 헌정이 된 곡 입니다. 이 곡은 그 당시, 프랑스의 유명한 명바이올리니스트였던 J.P.J 로드가 루돌프 대공을 방문했을 때, 이 사실을 알게 된 베토벤이 피아니스이기도 하였던 대공과 로드를 위하여 작곡한 곡입니다.
로드는 명 바이올리니스트로, 바이올린 전공 학생들 사이에서는 현재까지도 음악학교의 입학시험 과제곡으로 등장하는 아주 어려운 <<24 카프리스>>의 작곡가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초연 당시에는 대공이 아닌 베토벤의 피아노 반주로 이루어졌으며, 이 연주회가 베토벤이 피아니스트로서의 마지막 연주회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의 청력상실로 인하여 연주자의 길을 포기하고 작곡에만 전념하게 한 계기를 갖게 한 곡이 바로 10번 소나타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 10번 소나타는 베토벤 개인에게는 매우 큰 의미가 있는 곡이기도 합니다.
결국 베토벤 소나타 5번이 나오기까지에는 르네상스시대,바로크시대,고전파시대의 작곡가들이 하나하나 쌓아 올린 바이올린 소나타의 체계형식을 기초들로 하여 새롭게 작곡되고 발달됨으로 인하여 만들어졌다 할 것입니다.